[단편소설] 땡잡았다

by 부산문학 posted Mar 20,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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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땡잡았다

 

- 은유시인 -

 

 

 


1

 


  50대 중반의 홀아비 ‘오동통’ 씨는 요즘 하루하루 버티기가 그야말로 죽을 맛이다. 쫄딱 망하고 난 뒤로 수중엔 땡전 한 푼 쥔 게 없어 먹고 살 길도 막막한데다 지금 살고 있는 방까지 이 혹한에 당장 비워줘야 한다니 앞으로 어찌 살아야 할지 생각할수록 마냥 참담해지는 것이다. 
  그는, 오갈 데 없는 그를 혹 며칠이라도 마음 편히 지낼 수 있게 해줄만 한 가까운 사람을 아무리 떠올리려 해도 떠오르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데에 적잖이 허탈했다. 물론 수많은 얼굴들이 떠오르기야 하지만 그가 부도난 이래 그의 안부가 걱정되어 얼굴이라도 디밀어본 이는 누구 하나 없었다. 어쩌다 부도사실을 알게 된 친지로부터 걸려온 전화 역시 부도를 재차 확인하고 딴에는 걱정스럽다는 정도의 입치레로 끝내기 마련이었다.  
  손아귀에 얼마라도 거머쥔 돈이 있다면야 당장 추운 길바닥에 내몰리는 처지는 면할 수 있으니 굳이 남들한테 신세질 이유도 없을 테고, 또 아쉬운 소리를 늘어놓을 필요도 없겠다. 그리고 오라는 데는 없어도 갈 데는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비록 홀아비 궁티에 더욱 찌들지라도 시골 어느 허름한 빈집 하나 사서 들어앉거나 외국 어느 나라라 할 것 없이 무작정 무전여행 삼아 나설 수도 있는 것이고, 하다못해 허름한 여인숙을 전전하거나 하루 3천 원짜리 사우나를 거처로 삼을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사업이 망하고 신용불량자란 시뻘건 딱지가 여봐란 듯 이마 한복판에 떡 하니 붙여진 뒤론 십만 원, 아니 오만 원이란 푼돈마저 어디서 융통할 길이 없었다. 친척들은 물론 식구들마저 저흰 저희들끼리 그는 그대로 내왕 없이 살아 온지 이미 오래 전이요, 오랜 친구라 하여 허벌나게 찾아가 봐야 친구들 또한 하나같이 저 살길 바쁘다며 기껏 밥 한 끼 사주고는 시답잖은 충고에다 온갖 생색은 다 내려 하니 오히려 눈꼴 시릴 정도였다. 비로소 세상이 의외로 각박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길바닥에서 굶어 죽든 혹한에 얼어 죽든 이젠 신문에 가십거리조차 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세인들의 눈엔 개죽음만도 못한 죽음을 길바닥에서 맞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에 몸이 절로 부르르 떨려왔다.
  자신의 처지가 왜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는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도 한때는 사업이 번창하여 주위의 부러움과 질투를 받을 만큼 돈도 제법 벌었고 돈 씀씀이도 헤펐다. 그뿐인가, 돈이 헤픈 것만큼이나 인심도 헤퍼서 남들 퍼주기를 좋아했다. 궁색한 표정으로 찾아 와 사정하는 사람마다 딱하게 여겨 그냥 보내는 경우가 없었으니, 부도나기 전의 이삼년 동안에만 작게는 몇 십만 원에서 많게는 몇 천만 원까지 빌려주고 떼인 돈이 몇 억은 족히 될 것이다. 그렇게 돈을 빌려주고 받은 차용증이나 지불각서 따위가 한때는 백여 장도 넘었다. 
  그에게서 돈을 빌려간 인간들 모두가 하나같이 묘한 것이, 그가 부도나기 전까지는 그런대로 빌려간 돈을 제 때 갚으려는 노력을 보이더니 그가 부도난 뒤론 너나 할 것 없이 빌려간 돈들을 떼어먹으려 작정한 듯 보였다.
  그래도 처음에는 빌려준 돈을 돌려받으려고 일일이 전화를 걸고 찾아다니고 하여 몇 건은 돌려받을 수 있었지만, 대부분은 차일피일 해가며 일부러 사람 진을 빼려 들었다. 그래서 줄줄이 민사청구소송을 하기에 이르렀는데, 그것마저 돈은 돈대로 들고 고생은 고생대로 하면서도 실제로 건질 수 있는 것은 몇 건에 불과했다. 
  재산이 아예 없거나 있어도 제 명의가 아닌, 마누라니 자식이니 하는 주변사람들 명의로 되어있기에 판결을 받아놔도 무용지물인 것이다. 어쩌다 시내에 볼일이 있어 나가보면, 돈을 떼어먹은 녀석들이 활개치고 돌아다니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불갈비집에서 이빨 쑤시며 나오는 녀석이 있는가 하면, ‘그래, 부도나서 어려움이 많겠수, 먹고는 살만 하신가?’ 따위 말로 비아냥거리는 녀석도 있었다.

 

  사업을 확장하면서 어음 발행규모가 커지고, 또 끊어놓은 어음들이 교환 들어 올 때마다 메워 나가기가 벅차면서 몇 번인가 당일 돌아오는 어음 결제금액 중에 모자라는 금액을 의정부에서 ‘쉘부르’란 카페를 운영하던 손아래 동서 ‘최기정’한테 도움을 청했던 것인데, 그때마다 최가는 군소리 없이 잘만 융통해 주었다. 
  그렇게 최가로부터 돈을 빌리고 갚기를 몇 번인가 되풀이하던 어느 날, 최가가 그를 찾아와서‘당좌와 인감도장 등을 나한테 맡기고 자금관리에 일체의 간섭을 하지 않겠다면, 내가 직접 부산으로 내려와 6개월 내로 사업에 아무 어려움이 없도록 자금이 팡팡 돌아가게끔 해주고 다시 올라가겠노라.’ 라며 꼬드겼다. 설마 손아래 동서가 손위 형님을 망하게야 하겠는가 싶어 최가의 그러한 요구에 따랐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는 얼마 후엔 최가의 등쌀에 못 이겨 ‘잠시 동안’이란 단서로 회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남들 눈에는 무능한 그가 사업상 자신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큰 빚을 저질러놨고, 반대로 유능한 최가는 천방지축인 손위동서의 망해가는 사업을 구해내기 위해 그가 저질러놓은 빚들을 수습하는 꼴로 비쳐졌으리라.
  그런데, 웬걸? 최가는 애당초 제 사업을 위해 그의 당좌를 이용하려 접근했던 것이다. 최가는 그의 어음을 제멋대로 마구 발행하였다. 결국 수습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돈이라도 빼돌리고자 했던지 일부는 물건들을 어음으로 결제하여 사들였다가 이를 다시 덤핑시장에 처분하여 현금화했고, 또 상당수의 어음들은 어음을 못 메워 허덕거리는 다른 부실업체들의 어음과 맞교환하여 그 어음들을 진성어음인양 가장하여 와리깡(어음할인)하는 수법으로 어느 정도 돈을 빼돌렸다. 그리고 마침내 한계에 이르자 그의 당좌를 고의적으로 부도를 냈다. 맡긴지 불과 7개월 만에 일어난 일로 부도금액은 자그마치 14억 원이 넘었다.

 

  그는 거래은행 당좌계 대리로부터 당좌가 부도 처리된 사실을 전달받고 허겁지겁 최가에게 달려가 ‘무슨 이유로 부도를 냈느냐?’라며 따졌지만, 최가는 ‘피해자는 오히려 나다.’라고 우기질 않나, 콧방귀를 ‘픽픽’ 뀌어가며 그를 비웃기까지 했다.
 “형님 당좌는 진작 부도를 냈어야 했는데, 그래도 여태껏 부도를 안 내고 버틴 것은 그간 내가 등골 빠지게 돈을 구해다 밀어 넣었기에 이만큼 늦춰 졌을 뿐이오. 결국 형님 때문에 나만 빚을 잔뜩 짊어지게 됐수.”
  최가는 살이 통통히 오르고 개기름이 번들거리는 낯짝을 들이대고는 ‘나는 떳떳할 뿐만 아니라, 할 만큼은 다했다.’라며 씨부렁대는 것이었다. 참으로 어이없고, 억장을 무너뜨리는 변명이자 모함이었다.
 “그리고, 형님이 뭣 때매 내가 부도낸 어음을 책임지려 해요? 내가 부도낸 것이니 당연히 내가 책임져야죠. 그러니 회사를 내게 맡겨놓고 한동안 어디든 도망가 있으면 내가 다 해결할 거요.”
  그는 부도수습을 위한 해결책이라며 너무나도 태연하게 지껄여대는 최가의 그 말에 그제야‘속아도 단디 속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으며, 때늦은 후회와 절망감으로 머릿속이 텅텅 비고 숨이 막혀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는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겨우 말을 꺼냈다.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고 도망 다녀야 하나? 그리고……, 내 명의의 어음이 부도가 난 것이고, 또 날더러 갚으라며 채권자들이 들이닥칠 텐데……, 그걸 모른다고 어찌 잡아떼겠나? 나를 자발적으로 도와주겠다 하여……, 고마운 마음에…… 자네 요구대로…… 마누라한테도 맡기지 말라는 당좌와 인감도장을…… 맡긴 것이 아니던가? 그런데…… 결국 14억이 넘는 금액을 부도를 내며, 결국엔…… 내게 도움은커녕…… 손해만…… 잔뜩 입히다니. 그럼, 빼돌린…… 돈이라도 내놔봐라.”
 “내가 얼마를 빼돌렸든 그게 형님과 무슨 상관이오? 어차피 형님도 그 돈 나 몰라라 하고 안 갚으면 될 건데, 안 갚고 배 째라 하면 되는 거 아니오? 그렇게 하면 형님께 손해될 게 뭐가 있겠소? 내 말대로 따르면 형님네 식구들 먹고 살만큼의 돈은 떼어 주겠소.”
  그는 기가 질려서 더 이상 할 말을 잃었다. 얼굴이 창백해지고 넋마저 빠져나간 그를 앞에 세워놓고 최가는 박자라도 맞추는 듯이 탁자에 손가락을 ‘톡톡’ 두들겨가며 그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마치 그를 향해‘야, 이 어리석은 인간아’ 라며 한껏 조롱하는 듯 여겨졌다. 
  나중에 채권자들이 민사소송을 걸어오든 사기니 뭐니 해서 고발을 해오든 최가야말로 ‘나는 지시대로 어음을 끊었을 뿐이고, 어음 막는다며 이 돈 저 돈 끌어다 쓰는 바람에 나 또한 빚을 왕창 진 피해자다.’라며 우길게 불을 보듯 뻔했다. 정작 부도를 책임지고 감당해야 할 사람은 최가가 아닌 어음발행인인 그 자신이었기에 더욱 속앓이를 할 수밖에 없었다.

 

  최가의 사기행각은 그것으로 끝난 게 아니었다. ‘형님이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다. 회사를 계속 맡겨준다면 반년 만에 원래 상태대로 되돌려 놓겠다.’라는 최가의 제안에 실낱같은 기대감으로 회사를 맡겼던 것인데, 최가는 그로부터 보름도 지나지 않아 회사의 비품과 장비들 가운데 돈 될 만한 것들은 모조리 빼돌리는 일까지 저질렀다. 그리고 그 뒤로는 코빼기도 비추지 않았다. 
  그렇게 1년여 세월이 지나는 동안, 그는 최가로부터 ‘형님, 잘못했습니다.’란 빈말이라도 들을까 하여 눈 빠지게 기다렸으나 끝내 그러한 기다림도 헛것이 되었고, 또한 어찌 나오는가 싶어 일부러 찾지도 않았다.
  역시 최가로부터는 그 어떤 잘못을 시인하는 말이나 그에게 입힌 손해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 결국 그는 채권자들의 줄 이은 소송과 고발 등의 시달림을 비롯하여 온갖 수모를 겪으며 혼자서 회사를 지키려 몸부림을 쳤다. 그런 후안무치한 최가를 1년 2개월여 기다린 끝에 사기와 횡령, 절도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기에 이르렀는데, 결국 그 과정에서 내막도 제대로 알려들지 않고 ‘고발이라니? 동서지간에 있을 법한 일이냐?’라며 필사적으로 말리려 드는 처갓집과 담을 쌓게 되었다. 그리고 그로인해 이혼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손아래 동서라며 최가를 무턱대고 믿은 것이 그에게 큰 불행을 안겨 준 셈이었다.

  

  적금 등을 모두 해약하고 또 사업체를 정리하여 부도금액의 일부나마 변제했으나 그 외에 집이며 집기며 차량 등은 경매 처분되어 속절없이 그의 손을 떠났다. 그리고 갖은 우여곡절 끝에 부산에선 제법 변두리인 감천고개 삼거리 부근에 2천만 원짜리 전세방을 하나 차지하고 들어앉았는데, 그나마 어떻게 알고 찾아왔던지 하여튼 지독하고도 억척스런 인간을 만나 전세금마저 모두 빼앗기게 될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발단은, 최가가 2천4백만 원짜리 그의 명의로 된 약속어음 한 장을 발행하여 중앙동에서 모 금은방을 운영하는 ‘조성기’란 인간한테 2부 이자로 와리깡을 했던 것으로, 부도 이후 1년여 동안 그는 조가의 온갖 시달림을 받아가며 때론 삼백만 원도 갚고 때론 일백팔십만 원도 갚고 또 일백만 원도 갚는 등 그간 육백만원 가까이 갚아왔었다. 그리고 한동안 조가로부터 아무런 연락도 없더니 어느 날 갑자기 그것도 한밤중에 인상 꽤나 고약하고 껄렁껄렁한 덩치 서넛을 이끌고 집안에 들이닥친 것이다. 
 ‘원금의 잔액 1천8백2십만 원과 3년4개월 남짓의 2부이자 1천3백6십여만 원 등 받아내야 할 금액이 무려 3천2백만 원에 이르나, 전세금 2천만 원을 양도하겠다면 2천만 원만 받고 나머지 금액은 탕감해 주겠다.’라며, 부득불 전세금 2천만 원에 대한 양도각서를 쓰라고 폭력과 폭언으로 어르기를 8시간여, 결국 그들의 협박 외에도 오랜 담금질로 허기와 피곤에 지쳐 마지막 버팀목이라 할 수 있는 전세보증금을 넘겨주기에 이르렀다.
 “그래도 임대계약기간 만료까지는 넉 달인가 남았으니, 그때까지는 이 집에서 편히 살 수 있잖소. 그때까지 달 셋방이라도 구할 수 있는 돈을 마련해 보구랴.”

 

 

 

2

 


  그런데 어물어물하는 동안 그 넉 달이란 기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고 오늘로써 집주인과의 임대기간이 일주일 남짓 남았다. 
  임대기간이 만료하는 날, 조가는 그를 대신하여 집주인으로부터 2천만 원을 받아 갈 것이고 그는 무일푼으로 내몰리어 살림보따리 몇 가지를 든 채 추위에 떨며 어디론가 가야 할 것이다. 
  아무리 궁리해도 묘안은 떠오르지 않고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 초조하게 시계만 자꾸 들여다보는 고약한 버릇이 생겼다. 그뿐인가, 입안은 바싹 타들어가고 먹은 음식도 소화가 되지 않는 듯 쓴 트림만 거푸 솟구치는 것이었다. 
  어쩌다 늦은 밤 부산역 지하도를 건널 때마다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즐비하게 누워있는 노숙자들을 보며 ‘어찌, 일을 해서 따뜻한 방안에서 잠잘 궁리를 않고 저리 비렁뱅이처럼 길바닥에서 잘까?’ 싶었는데, 이제 보니 그게 남의 일이 아니었다. 그 때문에 그는 요즘 꿈자리마저 뒤숭숭하고 걸핏하면 가위에 눌려 소스라치며 깨어나길 거듭하였다.

 

  그는 ‘혹시 조가를 잘 설득하면 전세보증금 빼가는 기간을 얼마라도 하다못해 두세 달이라도 늦춰 겨울만큼은 날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일이백만 원이라도 사정사정하여 얻어 쓸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실낱같은 요행을 기대하며 조가의 가게를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크게 심호흡을 하면서 가급적 좋은 표정으로 당당하게 조가 앞에 나서리라 마음먹고, 또 일견 주눅 들어 잦아들려는 목소리에 힘을 주어 여러 번 발성연습을 했다.
  “조 사장님, 수고가 많으십니다.”
  “조 사장님,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금은방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려는 순간,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이 직감적으로 느껴졌다. 아기 업은 30대 후반의 아낙네가 조가를 향해 드세게 삿대질을 해대며 게거품을 잔뜩 뿜고 욕설을 퍼붓는데, 여간 아니었다. 
  조가는 안경도 멀찍이 벗어던지고 진열장 위에 얼굴을 쿡 처박은 채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는 마치 궁지에 몰린 쥐새끼처럼 ‘날 잡아 잡수.’ 라며 엎디어 있었다.
 “개새끼, 니기미 씨발새끼야. 네 놈이 내 돈 떼먹고 잘 살 줄 알았더냐? 씨발놈아, 내 돈 내놔 개놈아, 그게 어떤 돈인데 떼먹을려 하니, 좆탱이같은 놈아!”
  아기는 아기대로 등에 업혀 악을 쓰듯 바락바락 울어댔고, 아낙네가 퍼붓는 것은 시종일관 육두문자로만 버무려진 악다구니였다. 
  그는 순간 마음이 어두워졌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그의 청을 들이댈 수도 없을 것이다. 분위기도 그렇고 하여 다음날 다시 찾아오리란 생각에 나오려는데, 그때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분명 낯이 익은 사내가 언뜻 보이는 것이었다. 아낙네와 함께 온 듯, 어쩌면 아낙네의 남편이라도 되는 듯 보였다. 
 ‘누구더라?’
  얼른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사내는 구린데라도 있는 양 고개를 잽싸게 다른 곳으로 돌리고 애써 그의 시선을 외면하려 했다. 그는 사내의 뒤통수와 옆모습, 차림새를 탐색하며 그가 누구인가 가물대는 기억을 더듬었다. 
 ‘아! 생각났다. 대감집이라고 중앙동에서 제법 큰 한식당을 하던 그 인간, 4년여 전에 내 돈 2천만 원을 딱 일주일만 쓰고는 되돌려주겠다며 지불각서까지 써주고 빌려간 뒤론 종적을 감추더니 여태껏 감감무소식이었던 그 하구만이란 인간이다.’
  ‘하구만’은 한눈에 얼른 알아보기 어려울 만큼 그 모습이 많이 변해있었다. 당시엔 갸름하고 잘생긴 얼굴이라 기억하고 있었는데, 방금 본 얼굴은 찐빵같이 볼 살이 잔뜩 붙어있어 당시 모습과 영 딴판이었다. 그러고 보니 몸집도 살이 찌다 못해 어깨에서 허리, 엉덩이까지 경계가 모호하리만큼 비대했다.
 ‘새끼, 그간 잘 처먹고 잘 살았나보다.’
  순간 그의 머릿속은 여러 생각이 재빠르게 교차되었다. 그러면서 뭔가 강한 전율이 짜릿하게 전신을 훑고 지나가는 듯 했다. 한편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지없이 혼란스럽기까지 했다. 
  일단, 하가를 도망 못 가게 꽉 붙들어야겠다는 절박한 심정에 휩싸였다. 우선 출구를 가로막아 아무도 못나가게 하고 지금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부터 파악해야 했다. 
  아낙네가 조가에게 돈 내놓으라며 악다구니 퍼붓는 것으로 보아 조가가 아낙네에게 줄 돈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

 

 ‘다시 한 번 정리해 보자. 하가가 아낙네 바로 곁에 앉아 아낙네와 함께 조가를 상대로 대치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같이 왔음이 분명하고 어쩌면 둘 사이가 부부지간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하가가 조가한테서 받을 돈이 있다는 것이고 조가는 내게서 2천만 원을 빼앗아가려 한다. 난 또 하가한테 2천만 원을 받을게 있는 것이고……. 그렇다면 하가는 조가한테서 얼마를 받을게 있다는 것일까? 이 수수께끼를 잘만 풀어간다면, 어쩌면 전세보증금을 조가한테 빼앗기지 않아도 되는 꿈같은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3

 


  잔뜩 긴장한 탓인지 그는 가슴이 심하게 요동치고 다리가 크게 후들거리는 것을 느꼈다. ‘이런 절호의 기회를 절대로 놓치면 안 된다. 그러려면 먹이를 문 하이에나처럼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 먹이를 다 삼킬 때까지 결코 놓쳐서는 안 된다.’라며 자신에게 된통 다짐했다.
 “혹시, 하구만 씨 아닌가요?”
  하가는 못 들은 척 딴 짓하고 있었다.
 ‘역시 저 놈은 일부러 나를 모르는 척 하는구나. 어쩌면 낯짝 두껍게 오리발을 내밀지도 모른다. 저 놈이 끝까지 아니라고 버텨대면 언제 셋이 한 자리에 다시 만날 수 있겠는가. 이럴 땐 저 아낙네보다 더 지독하게 더 악랄하게 나와야 한다.’ 
  그는 조급한 마음과는 달리 자신을 억제하며 천천히 하가에게로 다가갔다. 손가락 사이로 잘도 빠져나가는 미꾸라지처럼 금방이라도 하가가 그로부터 빠져나갈 것만 같은 불안감이 엄습했다. 몇 걸음 거리에 불과했지만 하가에게 다가갈 때까지 두 다리가 제멋대로 후들거려 금방이라도 바닥에 주저앉을 듯 힘겨웠다.
  마침내 하가의 양쪽 어깨를 두 손아귀로 꽉 움켜쥐고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데 성공했다. 하가의 양 어깨는 살집이 두툼하여 여간해서는 손아귀에 들지 않아 그만큼 더 힘을 주고 움켜쥐어야 했다. 그는 하가의 한쪽 귀에 입을 갖다 대고 목소리에 잔뜩 힘을 주어 말했다.
 “이봐, 자네 하구만이 맞지?”
 “어! 누구신데요?”
 “나, 몰라? 정말 나 모르겠단 말이지?”
 “글쎄요.”
 “하구만이 맞아?”
 “예, 하구만인데…….”
 “이런 후레자식 같은 놈, 니 진짜 내가 누군지 모른단 말이지?”
 “혹시……, 오동통 씨?”
 “그래 씨발놈아, 니가 4년 전에 내 앞에 엎디어 눈물까지 글썽이면서 딱 일주일만 쓰고 돌려주겠다며 내 알토란같은 돈 2천만 원을 빌려가 놓곤 갚기는커녕 그간 전화 한 통 없었잖아. 기억 안 나나?”
 “글쎄요. 내가 댁한테서 2천만 원을 빌렸다고?”
 “아주 떼먹겠다고 작정한 듯 오리발 내밀며 배 째라는 식이네? 야, 이 좆같은 놈아! 너 그동안 내 돈 떼먹고 열나게 도망 다니더니 이제 보니 기껏 기억상실증에라도 걸린 게냐, 아니면 치매라도 걸린 게냐?  니놈이 그때 돈 빌려가면서 내게 자필로 써준 지불각서를 꼭 보여줘야만 그때서야 ‘돈 빌려간 게 확실하군요.’ 라며 기억할 수 있겠냐? 난, 이제 그 각서 하도 들여다봐서 똑같이 그리라고 해도 그리겠다. 일단 니놈이 어디로 내뺄지 모르니 112에 전화해서 경찰부터 불러내고, 경찰 에스코트 받으며 내 집으로 가야쓰것다.”
 “댁에 집엔 내가 왜 가요?”
 “댁에 집에 왜 가요? 오냐, 아주 떼먹을 작정하고 끝까지 나 몰라라 버텨볼 모양인데 택도 엄는 소리 말어. 나도 지금 똥꾸녕이 찢어질 판에 니깟 놈 사정 봐줄 줄 알고?  니놈이 기억 몬 한다니 니놈이 돈 빌리려고 내게 써준 각서를 니놈한테 보여줘야 않겠나. 아직 그 각서 버리기는커녕 때 묻지 말라고 내 보물함속에 잘 보관해 놨다. 2천만 원짜리 종이인데 왜 없앴겠냐. 거기엔 니놈 주민번호랑 니놈 손도장까지 콱 찍혔으니 그걸 보고도 아니라고 부정 몬 하것지.”
  하가는 더 이상 할 말을 잃은 듯 짐짓 딴청만 부리고 있었다.

 

 “당신, 뭔 일 있었어요?”
  돌연한 소란으로 잠시 악다구니 퍼붓기를 멈추었던 아낙네가 그제야 하가를 돌아보며 궁금증을 표했다.
 “아주머닌, 이 친구랑 어찌되는 사입니까?”
 “예, 지 실랑인데요.”
 “그래요? 그럼 조 사장한테선 얼마나 받을게 있는데요?”
 “예, 천팔백만 원인데요. 꽤 오래됐는데 갚으려 들지를 않아…….”
 “그래요? 조 사장한테서 천팔백만 원을 받을게 있는데 조 사장이 안 갚으려 든다 이거지요?”
 “예.”
 “마침 잘됐네요. 나, 조 사장한테 2천만 원 줄게 있어요. 내가 조 사장한테 2천만 원 주면 그 돈을 아줌마가 뺏어 가면 되겠네요.”
 “…….”
 “그리고 아줌마가 조 사장한테서 뺏은 돈 2천만 원을 내가 다시 아줌마한테서 뺏으면 되겠구요.”
 “그런 법이 어딧어요? 내가 조 사장한테서 받을 돈은 이 사람 돈이 아니고 내 돈인데…….”
 “그래요? 하구만 이 친구도 내 돈 이천만 원 떼먹었는데, 그럼 조 사장도 아줌마 돈 떼먹고 난 나대로 조 사장 돈 떼어먹으면 서로 골고루 공평해 지겠구먼요. 아줌만 자기 실랑이라 하여 내 돈 떼먹은 걸 감싸주면서 조 사장이 아줌마 돈 좀 떼먹었기로서니 그렇게까지 험한 욕을 할 수가 있어요?”
 “…….”

 

  그의 눈엔 2천만 원이란 돈이 어른거렸다. 그리고 숱한 생각들이 번개처럼 빠르게 그의 뇌리를 스쳐갔다.
 ‘내가 조가한테 2천만 원을 줘야 하듯이 하가 역시 조가로부터 2천만 원 가까운 돈을 받을게 있고, 나 또한 하가로부터 2천만 원 받을게 있는 것이다.’
 ‘참 절묘한 상황이다. 어떻게 서로에게 주고받을 돈이 똑같이 물려있는 세 사람이 똑같은 시각에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이 대면할 수 있겠으며, 어떻게 서로가 주고받을 액수마저 거의 똑같은지……. 이것도 우연이라기엔 마냥 신기할 뿐이다. 이런 우연의 일치가 그 발생 가능성으로 따지자면 발생 확률이 과연 몇 프로나 되는 것일까? 이것이 단지 우연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필연에 의한 것인지……. 어쨌든 오! 하나님 정말 고맙습니다.’
  그는 흥분에 휩싸여 몸이 경직되는 느낌을 받았다. ‘이럴 때일수록 흥분해서는 안 된다.’라고,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 한다.’라고 몇 번이나 스스로에게 다짐하였다.
 “내가 빌린 건 내가 갚을 테니, 이 자리에서 뭐라 카지 마요.”
  하가가 공연스레 되도 않는 소리를 지껄이며 나섰다. 그의 눈엔 아무리 봐도 하가란 인간이 싹수부터 그른 영 싸가지 없는 인간으로 보였다. 
 “뭐, 갚겠다고? 좀 전까진 언제 빌렸더냐란 식으로 잡아떼더니 이제야 내게서 돈 빌렸던 게 기억났다 이 말이지? 난, 니가 기껏 도와주려던 사람 돈만 전문적으로 떼먹고 도망 다니는 사기꾼인 줄 알았어. 근데 알고 보니 거짓말도 밥 먹듯이 하고 또 눈치 봐서 유리한 쪽으로 잽싸게 처신하려 드는 아주 여우같이 교활한 새끼로구먼? 난, 니 같은 놈을 인간쓰레기보다, 아니 똥보다 더 드러운 넘으로 취급할 끼다.”
 “…….”
 “그리고 내 돈은 언제 갚을 건데? 이 자리 말고 다음 기회에 만나서 주겠다? 주둥이에서 아무 생각 없이 튀어나오는 대로 찍찍 깔겨대는 니놈 약속을 나더러 또 믿으라는 게냐? 일단 이 자리만 모면하면 된다 이거지? 인간아! 왜 그리 비열하게 사냐? 니놈이 양심이라도 있는 놈이냐? 여지껏 갚지 않고 도망만 다니던 놈을 어떻게 믿으라고? 이담에 뒈져서 염라대왕 앞에서 갚겠다? 너, 지금 당장 내 돈 갚기 전엔 이 자리를 결코 빠져나가지 못하게 절대로 절대로 놔주지 않을 거니까 알아서 해.”
 “…….”

 

  좀 전까지는 죽은 듯이 고개를 푹 수그린 채 아낙네로부터 온갖 악다구니를 듣던 조가도 어느새 고개를 번쩍 치켜들고 상황의 급진전에 넋을 잃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무슨 생각에서인지 엉뚱한 소리를 끄집어내는 것이었다.
 “우리 이렇게 흥분해서 다투기만 할 게 아니라 시간적 여유를 갖고 차분한 대화로 풀어갑시다. 이렇게 한꺼번에 모여 목청만 높여가며 왈가왈부하느니 따로따로 만나서 조용히 해결하면 어떨까 싶네요.”
 “그게 낫겠네요. 셋이 서로 받을게 있다며 떠들어대는 것 보담 따로 만나 해결하는 게 백번 낫지요.”
  하가가 조가의 말에 대뜸 동조하고 나섰다.
 ‘어차피 이판사판이다. 강하게 밀어붙여야 한다. 악랄해져야 한다. 내가 이 자리에서 밀리면 난 길바닥에 나앉을 판이다. 인정이고 체면이고 볼 필요 없다. 계속 밀어붙이면 조가도 하가도 꼼짝 못할 것이다.’
  그는 머릿속의 복잡한 생각들을 정리하고 나자 짐짓 여유 있는 표정을 짓고는 단호한 억양으로 내뱉었다.
 “씨발놈들 좋아하네. 결국 내 돈만 떼먹겠다, 그런 얘기로군. 그런 빤한 잔머리들 계속 굴려 댈껴? 그럼 조기 꾸미 엮듯이 셋을 쪼르르 묶어 재판 한번 받아 볼까, 어찌 판결이 날려나? 셋이 똑같이 줄 게 있고 또 똑같이 받을 게 있다면 당연히 주고받아야지, 어떤 놈은 줄 건 떼어 먹으려 들면서 받을 것만 악착같이 챙기려든다면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 순 도둑놈 심뽀지. 하긴 두 놈 다 도둑놈이지, 남의 알토란같은 돈을 빌리고도 갚지 않으려 했으니까.”
 “…….”
 “하구만, 니놈은 조 사장한테서 천팔백만 원 받을게 있다며?”
 “…….”
 “조 사장, 하구만이한테 그 돈 안 갚을 껴? 갚아야 하겠지? 그리고 조 사장은 내게서 2천만 원 받아야겠지? 물론 난 조 사장한테 갚겠다며 전세보증금 양도증을 써줬고……, 난 나대로 하구만이한테 2천만 원 빌려줬으니 그 돈은 이참에 악착같이 받아야 쓰것다.”
 “…….”
 “하구만! 너 그 돈 떼먹을 거가?…… 말 좀 해봐, 개자슥아.”
 “마, 욕 좀 그만하소. 누가 안 갚겠다 캤소?”
 “그럼 얘기는 끝났다. 내가 조 사장한테 2천만 원 갚았다 치고, 조 사장은 그 돈으로 하구만에게 2천만 원 갚았다 치자. 그리고 하구만은 그 돈을 다시 내게 갚았다 치면 계산은 끝이다. 다시 말해 서로서로 탕감해 준다면 결국 주고받을게 없다는 얘기다. 둘 다 내 말 이해가 가나?”
 “…….”
  그 말을 내뱉는 그의 말 꼬리가 가늘게 떨렸다. 왠지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금방 ‘쨍’하고 금이 갈 것만 같은 값비싼 유리글라스를 한 치도 안 되는 비좁은 난간위에 올려놓은 듯 위태로움과 조바심에 진저리치듯 떨었던 것이다.
 ‘제발,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고는 누구에게라 할 것 없이 무조건 저 높고 높은 곳에 있는 절대 신을 향해 빌고 또 빌었다. 
  어수선한 침묵도 잠깐, 조가가 말꼬리를 물고 나왔다. 
 “그럼, 나만 2백만 원 손해 보라는 얘기 아니오?”
 “어째서?”
 “난 이 양반들한테 천팔백만 원만 갚으면 되는데…….”
 “그래? 그럼 하구만! 니 말이다. 조 사장한테 이자까지 쳐서 받지 그래, 빌려 준지 제법 되었다며?”
 “괜히 한번 해본 소리요.”
  조가가 썰렁한 농담이라도 하고 난 듯 억지웃음을 흘렸다. 조가는 좀 전까지만 해도 그의 눈에는 염라대왕보다 더 무섭게 보이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젠 조가가 무섭기는커녕 같잖은 인간, 멍청한 인간으로밖엔 비쳐지지 않았다.

 

  그는 마침내 조가가 그를 상대로 청구했던 민사소송 판결문과 조가한테 그가 직접 써주고 집주인이 확인 날인한 전세보증금 2천만 원에 대한 양도각서, 또 최가가 조가한테 끊어줬던 그의 명의로 발행된 약속어음, 즉 2001년 4월 13일자로 부도 처리된 2천4백만 원짜리 약속어음 등 세 가지 중요 문건을 받아 쥘 수 있었다. 
  그는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발걸음이 유난히 가벼워져 날아갈 듯 했다. 뿐만 아니라 그의 눈엔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어찌나 예뻐 보였던지 그들의 양 볼때기를 움켜쥐고 입술을 피터지게 물어뜯어주고 싶은 충동을 느껴야 했다. 
  좀 전까지만 해도 절망스럽기만 하여 세상이 모두 자신에게 등을 돌리고 있는 것으로 여겨졌었으나, 이제는 너무 기쁜 나머지 세상이 자신과 친구하자며 다가오는 듯 여겨졌다. 
  그는 오가는 사람들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쳐대었다. 남들이 미쳤다고 수군대더라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얏호! 나, 오늘 2천만 원 벌었다아!”
  “……!”
  “나, 오늘 땡잡았단 말이다.”

 

 

 


땡잡았다


- 끝 -

 


 

 

2004/08/30